현실의 바깥, 시공간의 간극을 지각하는 형태들
안소연 미술비평가

김태훈의 <명상을 위한 자극 #1 시각>(2017)은 그가 겪은 몇몇의 우연한 경험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3채널 영상으로 제작된 이 작업은 전시공간을 에워싸는 세 개의 벽 전체를 스크린 삼아 설치되었는데, 김태훈은 그렇게 스크린으로 에워싼 공간의 한 가운데를 정해 관객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은 그 자리에 앉아, 스크린의 정중앙을 응시해야 하는 암묵적 통제와 지시를 따르게 된다. 실제로 화면은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흑백의 기하학적 형태로 꽉 차 있으며, 그 형태의 수열적 질서는 화면의 중심으로부터 끝없이 확장 또는 증식되어가는 구조를 드러낸다. 이 단순한 이미지는 김태훈이 《아티언스 대전 17》 레지던시 기간 중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원들과 협력하여 작업에 관한 여러 가지 실험을 모색해가던 과정에서, 시자극에 따른 뇌파 반응을 측정할 때 사용했던 패턴을 참조한 것이다. 그는 시선을 패턴의 중앙에 고정시켜 일정한 자극이 눈에 감지될 때 일어나는 뇌파의 반응을 직접 검사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혹은 반수면상태의 모호하고 낯선 상황을 경험했다. 일종의 최면처럼, 그는 일시적으로 현실에서 이탈한 듯 신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뒤엉킨 내부의 아득한 변화를 감지했다. 김태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자신의 뇌파에 복잡한 변화를 발생키는 외부 자극으로서의 단순한 패턴 모형을 이용해, 감각의 통제와 조율에 대해 주목해 보고 그것을 통한 현실 이면의 불확실한 시공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명상을 위한 자극 #2 요가>(2017)는 <명상을 위한 자극 #1 시각>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시각 장(場) 안에서 실행한 요가 퍼포먼스다. 뇌파 측정과 마찬가지로, 김태훈에게 요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체감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요가 수업을 마치고 바닥에 누워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그는 외부 세계와 자신의 내부 감각이 충돌하는 듯한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마주한 비현실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며 일으키는 아련한 풍경은, 마치 우주의 별들이 머리 위 허공에서 소용돌이치며 폭발하는 스펙터클한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그에게 현실을 넘어선 과도한 시각 경험에의 몰입을 유도했다. 이처럼 김태훈은 뇌파 측정과 요가 수업을 통해 겪었던 매우 사적인 경험을 토대로 현실을 둘러싼 좀처럼 정의할 수 없는 시공간의 간극에 대해 사유하게 되었고, 이는 그가 지속적으로 작업에서 다뤄왔던 “공간 드로잉”의 맥락과도 닿아있다. 말하자면, 두 점의 <명상을 위한 자극> 연작은 외부와 내부, 진짜와 가짜, 의식과 무의식, 신체와 심리 등이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시공간의 간극에서 둘의 일시적 만남 혹은 중첩을 인식케 하는 인간의 감각에 주목하고 있다. 이때 일련의 외부 자극은 “사이의 공간”에 잠재되어 있는 불확실한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스위치처럼 현실에서의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김태훈은 앞서 립모션(Leap Motion)과 HMD(Head mounted Display)를 이용한 작업으로 <공간에 그리다>(2014)를 제작했다. 이 작업은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관객의 손동작을 감지한 기계장치가 그 움직임을 시간 차 없이 스크린에 옮겨 가시화시킨다. 이때 허공을 의식하게 되는 손동작은 임의의 스크린을 매개로 메아리처럼 본인에게 되돌아오는데, 그것은 다음의 손동작에 일말의 원인을 제공하는 시자극으로 작용한다. 그 과정을 극대화하는 매개 장치로 HMD가 쓰인 셈인데, 관객은 시각을 압도적으로 통제하고 조율하는 HMD를 통해 마치 유령처럼 실체 없고 보이지 않는 행위의 흔적을 주체의 시감각 앞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바짝 갖다놓는다. 김태훈은 이렇듯 보이지 않지만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다른 차원의 감각에 대해 인식하려 한다. 그는 익숙한 시공간의 질서에서 살짝 비껴있는, 그래서 그것이 현실에 흐릿하게 드러날 때조차도 마치 픽션처럼 어떤 이질적인 것 혹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모호하고 낯선 상황들을 제시한다.

 

이는 마치 들뢰즈(Gilles Deleuze)가 자신의 철학적 개념을 이용해 영화에 대해 논의하면서 ‘외화면’을 언급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것은 내부와 외부의 간극과 접점을 드러냄으로써, 현실의 바깥 부분을 지각하고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를 사유하는 것이다. 김태훈은 현실적 시공간의 서사 위에 픽션처럼 다른 층위의 외화면을 끌어들인다. 그는 벌어진 틈새처럼 “혼돈”을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지각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지각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간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매체와 형식으로 구체적인 장면들을 이끌어냈다. 말하자면, 김태훈은 현실을 둘러싼 시공간의 간극에 대해 상상하면서 그것의 잠재적 상태를 감각의 차원까지 끌어올릴만한 시각적 이미지를 추적해 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언뜻 그의 작업은 일관성 없이 단순히 매체의 물리적 특성에 사로잡혀 있고, 작가는 그것을 기술적으로 실연(實演)시키는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의 태도와 사유가 보다 정교한 표현을 거쳐 다뤄질 필요가 있긴 하지만, 그는 다양한 매체와 이미지 간의 관계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그것을 매개하는, 즉 그것을 생성하고 다시 지각하는 신체의 감각에 대해 적절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낮섬에 관한 기억: 걷기>(2017)와 <기억: 1993>(2015)의 경우,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김태훈은 기억이라는 화두를 작업에 끌어들였다. 특히 <낮섬에 관한 기억: 걷기>는 그가 청주의 한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는 기간 동안 제작한 것으로, 그는 낯선 장소에 대한 감각의 새로운 적응에 주목했다. 그는 강을 따라 산책로를 걷듯 자신의 새로운 스튜디오 안에서 물건들이 놓인 동선에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새로운 장소의 리듬에 서서히 몸이 길들여져 갈수록, 그가 거주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챙겨 다녔던 일상의 물건들은 새로운 공간에 재배치되어 익숙함이 연출하는 낯선 풍경을 드러낸다. 또한 무심천을 산책하며 촬영한 낮의 풍경은 인공적인 빛들이 숱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실내 공간과 나란히 엮이면서, 두 개의 장면이 하나의 모서리에서 만나 충돌하거나 결합하면서-실제로 전시 때는 전시공간의 모서리를 기준으로 두 개의 영상이 대칭 구조로 설치됐다- 섬처럼 부유하는 일종의 또 다른 층위의 이미지 서사를 시각적으로 구축한다. 결과적으로, 전시장에 설치된 각각의 형태와 구조는 기억처럼 상이한 시공간의 간극을 지각하는 형태들, 감각의 자극체로 작동한다.

 

한편 김태훈은 파리의 한 레지던시에 거주하는 동안 백자토를 이용한 <도깨비>(2016) 연작을 제작했다. 그는 흙으로 반추상적인 형태-불, 땅, 꽃 등-를 빚어 스튜디오 바깥 주변에 임의로 내다 놓았다. 작은 탁상용 화분 정도만한 흙덩어리들은 작가가 레지던시 입주 일정을 마치고 떠나 온 후에도 그곳에 남아 그 새로운 장소에서 각각 무언가로 존재하고 있다. 김태훈은 그 존재에 “도깨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래 전, 그가 어두운 방 안에서 양손에 작은 전등을 들고 허공에 그림을 그려놓고선 그것을 도깨비라 부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가 만든 도깨비는, 다시 <명상을 위한 자극> 연작처럼 그 형태가 지각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요컨대 김태훈은 그가 다루는 시각적 형태의 의미나 그것이 재현하는 서술적 효과는 뒤로 하고, 그것보다 앞서 우리가 지각하는 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 지각의 성질이 어떤 것인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그것은 형태에 대한 물음이 아니고 지각에 관한 물음이기에, 그러한 물음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조율하는 것이 작가에게는 꽤나 큰 과제이자 성과로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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