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주변을 맴도는 선, 시간을 흔드는 선
김민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세상은 무한한 시간의 개념 속에 갇혀 있다. 조금 전까지 존재하던 현실의 시간은 과거로 빠르게 멀어지고 미래로부터 현실로 다가오는 시간은 무섭게 다가온다. 이 모든 시간의 흐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 균일하게 적용되지만 개개인의 취향과 감성에 따라 받아들이는 시간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모두 다르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에 따라서 시간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양면성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시계의 정해진 패턴, 규칙에 따라 숫자 사이를 돌며 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물리적인 개념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현 인류의 규칙인 시계바늘에 갇힌 채 더 이상 신비스럽지 않고 의미도 새로운 것이 없다. 그저 인류문명이 정해 놓은 시간 바늘에 갇힌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시간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시간은 공간, 차원, 인지체계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마다 개인차에 의해 시간은 분리되고 흩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사회적인 규칙에 따라 일부분만 사용할 뿐이며 시간을 어떤 방법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가령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의 모든 것을 증명하는 수학공식에는 시간(S)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증명할 공식은 이 세상 그 어떤 곳에도 없다. 그 것이 바로 이 세상 존재 그 자체 ‘시간’이다.

 

김태훈 작가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제작해 온 작품을 천천히 자세히 살펴보면 작품 전체에 흐르는 묘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2008년에 제작한 ‘관계’작품은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입체작품이다. 작가 개인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표현한 이 작품은 오랜 시간동안 수 없이 많은 하얀 실을 상하로 연결하고 때로는 중간에 실을 묶어서 새로운 조형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자신과 타인의 관계 속에 수없이 파생되는 상처, 고통,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을 사적인 조형공간으로 연결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작품은 무수히 많은 실의 시작점인 점들이 있다. 이 점은 작가가 그동안 고통스러웠던 시간의 집적이며 바로 존재, 그 자체로 보인다. 그 존재들에 시간을 더하면 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들이 지나간 흔적이 바로 면인데 이것이 기억이다. 그리고 면들이 모아져 하나의 개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 것이 바로 작가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선은 기억을 추적하는 시간들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모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간이 곧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는 것은 그저 공(空)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공(空)에 사이(間)가 바로 선이고 존재이고 시간인 것이다. 이 선은 어디든 갈 수 가 있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모든 존재를 증명할 수가 있다. 이 선들이야말로 미지의 공간을 열수 있는 열쇠이다.

 

이 열쇠는 다시 허공을 긋기 시작했다. 2013년에 제작한 ‘도깨비’는 특정한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빛으로 허공을 그리기는 행위를 한다. 그 행위에 따라 빛은 춤을 추듯 허공을 지나 곧 다가올 시간과 이미 흩어지고 사라진 시간을 추적하는 행위를 한 장의 순간의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것은 바로 ‘도깨비’이다. 이 도깨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다. 인간의 내면과 기억에 의지해 존재 할 수밖에 없는 허상, 어찌 보면 이 도깨비야 말로 작가가 그동안 그토록 찾고 싶던 현실, 사회구조 밖에 존재하는 허상이며 끊임없이 작가 자신을 괴롭혀 왔던 또 다른 자화상인 것이다. 자신을 닮게 그리는 자화상처럼 도깨비 또한 자신을 닮은 또 다른 자아이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속에서 흩어진 퍼즐을 찾아 진실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언젠가는 완전히 소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는 모든 사물들은 빛이 머문 순간에 영원히 봉인되고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사실 여기에서 장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작가가 말한 1000년의 도시, 경주에서 촬영한 의미 또한 곧 다가올 절대적인 시간에 의해 언젠가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빛 드로잉은 오브제와 결합하며 또 다른 공간을 찾아 허상을 추적하는 ‘반인반수’작품과 시골 폐가의 옥상에 세상을 밝히는 ‘도깨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은 허상에 대한 덧없음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이 작품들은 마치 작가 본인이라는 것을 숨겨 놓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장소와 기억에 의존하며 제작해 왔던 허상을 빛으로 그린 일련의 작품들은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옮겨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을 과감히 버리고 가상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이 공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다. 좌표도 없는 무중력공간에 점으로 연결된 선들이 허공을 맴돌며 공간을 채워 나간다.

2014년에 제작한 ‘공간에 그리다’ 작품은 2008년에 처음 선보인 ‘관계’ 작품과 연결되어 있어 보인다. ‘관계’의 작품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떠다니며 존재하는 상호적인 감정의 간극을 자신만의 은유적인 시각으로 담아냈다면 2014년에 선보인 ‘공간에 그리다’ 작품은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이 참여하여 센서를 통해 가상의 공간에 선을 그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는데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관점에서 변질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느낄 수밖에 없는 상호적인 인식의 관계를 자신과 타인의 경계의 가상공간에 옮겨놓았다.

이처럼 인식체계를 혼란스럽게 표현한 작품들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을 흔드는 단순한 의미보다 그 이후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해진다. 처음 작품을 체험하는 관람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체험공간에서 관람객들은 무의식적으로 각자의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더불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이었는지를 발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인식의 체계를 다른 차원으로 옮기는 설정으로 사회와 예술의 경계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방법들이 계속 쌓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최면에 걸리고 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다. 그 최면에 걸리지 않으려면 그동안 살아 온 모든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을 모두 버리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그 찰나의 지점을 현실적으로 붙잡으려는 시도는 결국 행위 그 자체와 무엇을 표현하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결국 개인이 인지해온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곧 바로 들이닥치는 시간에 의해 지금까지 공허함만 메아리치는 순간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런 시간의 불변의 속성에 의해 작가의 주변에는 무의미한 현실만 남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몰랐던 허무함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시간 그 자체를 느끼게 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에 선보인 ‘낮섬_낯섦에 대한 기억, 걷기’는 지금까지 덧없음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추적하며 천착해 왔던 빛, 선, 존재, 시간에 대한 자신의 예술의 관점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비 존재론적인 결과물이다.

나무로 연결한 구조물 사이로 희미한 조명이 분절된 공간을 유영하고 있고 상념에 사로잡혀 무작정 배회하는 자신의 시각에 따라 촬영한 일상의 흔한 영상이 초점 없이 흔들린다. 이 영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특정의 장소나 목적을 갖고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 극히 자신의 감정만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오브제 같은 영상이다. 그리고 자신이 작업실 내부를 유영하듯 앵글이 돌고 있는 영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끝없이 찾고자 하는 진실, 혹은 예술을 추적하는 행위만을 표현한 단순한 영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업실 영상에 등장하는 화분을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런 숨겨진 설정의 구도는 각기 다른 오브제, 영상, 화분, 조명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험적 사유의 공간으로 끌어 들이고 차원을 비틀고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킨 그림자가 이 전체를 묵묵히 지배하고 있다.


그동안 김태훈 작가가 숨쉴 틈 없이 추적하고 있는 미지의 영역은 어찌 보면 이 그림자와 닮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무의미해 보이는 낯선 오브제, 곧 흩어질 빛의 기록들, 개인과 타인의 불안한 상처 등은 사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한 방정식의 각각의 기호들과 같다.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미지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없다. 오히려 어디에도 속에 있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하고 접근하다 보면 서서히 그 실체가 언젠가는 드러나기를 기다려 본다.

김태훈 작가에 있어서 사실 이 모든 일련과정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떨쳐 보려고 해도 그 행위마저 무의해져 있는 공허함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공허함은 무엇보다도 작가가 작업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예술이 무엇일까? 이제 작가의 것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세상을 파고드는 그 지점이 바로 미래와 과거 어느 중간에 있는 순간일 것이다. 작품의 내면 깊이 잠재되어 있는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인가 맞닿게 되는 보이지 않는 경계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많지는 않지만 다양하게 제작해 온 작품을 살펴보면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얻는 부분들은 아마도 낯설음으로 부터 느껴지는 감정들이 허무함과 함께 밀려온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뻔한 상호소통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정을 혼란스럽게 하고 관점을 다른 차원으로 인도한 다는 점에서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의도가 어디까지 갈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김태훈 작가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스타일과 다르게 자신의 감정을 예술로 끌어 들인다는 점이다. 김태훈 작가는 그 지점을 주목하고 관념 밖으로 밀려난 진실을 다시 수집한다. 진실이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가상의 공간에 작가의 시선은 시종일관 자신의 주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며 그 시선은 오늘도 쉴 틈 없이 주변을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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